전쟁·분쟁1940년 9월 17일

한국광복군 창설

충칭에 자리 잡은 대한민국 임시 정부가 한국광복군을 창설했다. 총사령관은 지청천이었고, 1942년 조선 의용대가 합류했다.

한국광복군 총사령부 성립 전례식 — 1940년 9월 17일 충칭
한국광복군 총사령부 성립 전례식 — 1940년 9월 17일 충칭

작자 미상 · Public domain · 원본

1940년 충칭에 정착한 임시 정부는 한국 독립당을 여당으로 삼고 김구 주석 중심의 단일 지도 체제를 갖추었다. 그해 9월 17일 중국 국민당 정부의 지원으로 한국광복군을 창설했다(총사령관 지청천, 참모장 이범석). 처음에는 중국 군사 위원회의 통제를 받는 "한국광복군 9개 행동 준승"에 묶였으나 1944년 이를 폐지했다.

1941년 태평양 전쟁이 일어나자 임시 정부는 일본에 선전 포고했다. 1942년 김원봉의 조선 의용대 본대가 합류해 김원봉이 부사령관이 되었고, 1944년에는 김규식이 부주석이 되어 좌우가 함께하는 연합 정부가 되었다. 1943년 영국군의 요청으로 인도·미얀마 전선에 대원을 보내 포로 심문, 문서 번역, 선전 활동을 맡았다.

지도에서 보기

1940년의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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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나라
중화민국 · 후원국
관련 장소
충칭 대한민국 임시 정부 청사

관련 인물

  • 김구1876년 – 1949년

    주도자 · 호는 백범. 한인 애국단을 만들고 임시 정부 주석으로 한국광복군을 이끌었다. "백범일지"

  • 지청천1888년 – 1957년

    지휘관 · 한국 독립군 총사령관으로 한중 연합 작전을 이끌었다. 한국광복군 총사령관

  • 이범석1900년 – 1972년

    지휘관 · 북로 군정서의 장교로 청산리 전투에서 싸웠다. 한국광복군 참모장·제2지대장을 지냈다

  • 김원봉1898년 – 1958년

    지휘관 · 의열단 단장. 민족 혁명당을 이끌고 조선 의용대를 만들었다. 한국광복군 부사령관

  • 김규식1881년 – 1950년

    관련자 · 신한 청년당 대표로 파리 강화 회의에 갔다. 민족 혁명당에 참여했고 임시 정부 부주석을 지냈다

앞뒤 사건

이전 사건
1940년 창씨개명
이후 사건
1941년 대한민국 건국 강령

이 사건이 든 테마

  • 제2차 세계 대전과 한국1937년 – 1945년

    전시 동원과 수탈, 독립운동의 군대, 카이로 선언에서 광복까지

  • 중화민국과 일본 제국주의1912년 – 1949년

    신해혁명으로 선 중화민국이 군벌 분열·5·4 운동·국공 합작과 북벌을 거쳐 일본의 침략에 맞서 싸우고 국공 내전으로 갈라진 시대 — 일본은 다이쇼 데모크라시에서 만주 사변·군부 쿠데타를 거쳐 중일 전쟁과 대동아 공영권으로 치달았고, 식민지 한국은 3·1 운동과 무장 독립 투쟁으로 맞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