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1888년 – 1957년

지청천

한국 독립군 총사령관으로 한중 연합 작전을 이끌었다. 한국광복군 총사령관

호는 백산. 망명 뒤에는 이청천이라는 이름을 썼다. 서울에서 태어나 대한제국 육군 무관 학교에 들어갔으나 학교가 문을 닫자 유학생으로 일본 육군 사관 학교에 들어가, 1914년 졸업하고 일본군 장교가 되었다.

1919년 3·1 운동 뒤 일본군을 탈출해 만주로 가서 신흥 무관 학교에서 독립군을 길렀다. 서로 군정서를 거쳐 러시아로 옮겼다가 1921년 자유시 참변을 겪고 붙잡히기도 했다. 정의부를 거쳐 1930년 한국 독립당의 한국 독립군 총사령관이 되었고, 만주 사변 뒤 중국 호로군과 연합해 1932년 쌍성보, 1933년 대전자령에서 일본군을 크게 무찔렀다.

1940년 충칭에서 한국광복군이 창설되자 총사령관을 맡았고, 미국 OSS와 국내 진공 작전을 준비했으나 일본이 먼저 항복했다. 1947년 귀국해 대동 청년단을 이끌었고, 제헌 국회와 제2대 국회의 의원을 지냈다. 1957년 세상을 떠났고, 1962년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이 추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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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애의 동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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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사건 4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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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청천이 이끄는 한국 독립군이 중국 호로군과 연합해 북만주의 쌍성보·사도하자·동경성·대전자령에서 일본군과 싸워 이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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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35년민족 혁명당참여자

    의열단·한국 독립당·조선 혁명당 등이 난징에서 민족 혁명당을 만들었다. 중국 관내 독립운동 세력을 하나로 묶으려는 민족 유일당 운동의 결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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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40년한국광복군 창설지휘관

    충칭에 자리 잡은 대한민국 임시 정부가 한국광복군을 창설했다. 총사령관은 지청천이었고, 1942년 조선 의용대가 합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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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광복군이 미국 전략 정보국(OSS)과 손잡고 특수 훈련을 받으며 국내로 들어갈 작전을 준비했다. 일본이 먼저 항복해 실행하지 못했다.

함께 나오는 인물

  • 김구1876년 – 1949년

    호는 백범. 한인 애국단을 만들고 임시 정부 주석으로 한국광복군을 이끌었다. "백범일지"

  • 김원봉1898년 – 1958년

    의열단 단장. 민족 혁명당을 이끌고 조선 의용대를 만들었다. 한국광복군 부사령관

  • 김규식1881년 – 1950년

    신한 청년당 대표로 파리 강화 회의에 갔다. 민족 혁명당에 참여했고 임시 정부 부주석을 지냈다

  • 이범석1900년 – 1972년

    북로 군정서의 장교로 청산리 전투에서 싸웠다. 한국광복군 참모장·제2지대장을 지냈다

  • 조소앙1887년 – 1958년

    정치·경제·교육의 균등을 말한 삼균주의를 세웠다. 대한민국 건국 강령의 바탕이 되었다

이 인물이 나오는 테마

  • 제2차 세계 대전과 한국1937년 – 1945년

    전시 동원과 수탈, 독립운동의 군대, 카이로 선언에서 광복까지

  • 중화민국과 일본 제국주의1912년 – 1949년

    신해혁명으로 선 중화민국이 군벌 분열·5·4 운동·국공 합작과 북벌을 거쳐 일본의 침략에 맞서 싸우고 국공 내전으로 갈라진 시대 — 일본은 다이쇼 데모크라시에서 만주 사변·군부 쿠데타를 거쳐 중일 전쟁과 대동아 공영권으로 치달았고, 식민지 한국은 3·1 운동과 무장 독립 투쟁으로 맞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