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7세기

부여 정림사지 5층 석탑

다른 이름: 정림사지 오층 석탑, 평제탑

사비 도성 한가운데 정림사 터에 남은 백제의 석탑. 목탑의 짜임을 세련되게 돌로 옮긴 백제 석탑의 완성형이다.

부여 정림사지 5층 석탑 — 목탑의 짜임을 돌로 옮긴 백제의 석탑
부여 정림사지 5층 석탑 — 목탑의 짜임을 돌로 옮긴 백제의 석탑

Bernard Gagnon · CC0 · 원본

사비(부여) 도성 한가운데 있던 정림사 터에 서 있는 높이 8.3m의 5층 석탑이다. 기둥돌 가운데가 살짝 볼록하고, 넓고 얇은 지붕돌의 끝이 살짝 들려 목탑의 모습을 돌로 나타냈다. 미륵사지 석탑이 목탑을 거의 그대로 돌로 옮겼다면, 정림사지 석탑은 이를 간결하고 균형 잡힌 형태로 다듬어 백제 석탑의 완성형으로 꼽힌다.

660년 백제를 멸망시킨 당의 장수 소정방이 1층 몸돌에 "대당평백제국비명"(당이 백제를 평정한 것을 기념하는 글)을 새겨, 한때 "평제탑"으로 잘못 불렸다. 백제가 남긴 석탑은 미륵사지 석탑과 이 탑 둘뿐이다. 국보이며, 2015년 백제 역사 유적 지구의 하나로 세계 유산이 되었다.

지도에서 보기

650년의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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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나라와 지도자
백제 — 의자왕
관련 장소
사비 (부소산성)

관련 인물

  • 소정방592년 – 667년

    관련자 · 당의 장수. 13만 대군을 이끌고 바다를 건너 백제를 쳤다

앞뒤 사건

이전 사건
648년 나당 동맹
이후 사건
650년 산수무늬 벽돌

이 사건이 든 테마

  • 탑의 변천634년 – 146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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