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1593년
훈련도감 설치
임진왜란 중 류성룡의 건의로 포수·사수·살수의 삼수병을 기르는 훈련도감을 두었다. 급료를 받는 상비군이었다.
임진왜란 초 조선군은 일본군의 조총과 집단 전술 앞에 크게 무너졌다. 평양성 탈환(1593) 때 명군의 절강 병법이 효과를 보자, 선조는 류성룡의 건의를 받아 1593년 훈련도감을 설치하고 명 장수 척계광의 "기효신서"를 바탕으로 군사를 훈련했다.
훈련도감 군사는 조총을 쏘는 포수, 활을 쏘는 사수, 창검을 쓰는 살수의 삼수병으로 편성했다. 의무병이 아니라 모집해 급료를 주는 직업 군인이었고, 그 비용을 대려고 토지에 삼수미를 따로 거두었다. 훈련도감은 뒤에 5군영의 중심으로 도성을 지켰다.
지방군도 고쳐 1594년 속오군을 편성했다. 양반부터 노비까지 함께 묶어 평소에는 농사를 짓다가 훈련을 받고 유사시 싸우게 했다. 진관 체제를 다시 세운 것으로, 양반들은 뒤에 노비와 함께 편성되는 것을 꺼려 빠져나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