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예혁명과 권리 장전
다른 이름: 명예혁명, 권리 장전, 권리 선언, 입헌 군주제
1688년 잉글랜드 의회가 가톨릭을 되살리려던 제임스 2세를 몰아내고 윌리엄 3세와 메리 2세를 왕으로 맞았다. 1689년 권리 장전으로 의회가 왕보다 위에 서는 입헌 군주제가 자리 잡았다.

Samuel Wale · Public domain · 원본
왕정복고 뒤 찰스 2세가 가톨릭에 기울자 의회는 심사법(1673)으로 공직을 국교도에게만 열고, 인신 보호법(1679)으로 불법 구금을 막았다. 왕의 동생 제임스의 왕위 계승을 두고 이를 막으려는 휘그와 받아들이는 토리로 나뉘면서 정당의 싹이 텄다. 1685년 즉위한 제임스 2세가 가톨릭교도를 관리와 장교로 쓰고, 1688년 6월 가톨릭 왕자가 태어나자 두 당의 지도자들은 그의 딸 메리의 남편인 네덜란드 총독 윌리엄을 불러들였다.
1688년 11월 5일 윌리엄이 군대를 이끌고 토베이에 내리자 제임스 2세는 싸우지 않고 프랑스로 달아났다. 잉글랜드에서 피를 흘리지 않고 이루어졌다 하여 명예혁명이라 부르지만, 아일랜드와 스코틀랜드에서는 제임스 지지 세력과 싸움이 이어졌다. 의회는 1689년 2월 권리 선언을 받아들이는 조건으로 윌리엄 3세와 메리 2세를 공동 왕으로 세웠고, 12월 이를 권리 장전으로 법률로 만들었다.
권리 장전은 왕이 의회의 동의 없이 법을 멈추거나 세금을 걷거나 평시에 상비군을 둘 수 없게 하고, 의원 선거의 자유와 의회 안 발언의 자유를 보장했다. 이로써 의회 주권에 바탕을 둔 입헌 군주제가 자리 잡았고, 로크의 『통치론』이 이를 뒷받침했다. 같은 해(1689) 조선에서는 숙종이 기사환국으로 서인을 몰아내고 남인을 등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