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마이야 왕조 성립
다른 이름: 우마이야 칼리프국
시리아 총독 무아위야가 다마스쿠스를 수도로 칼리프 자리에 올라 우마이야 왕조를 열었다. 칼리프 자리가 세습되기 시작했다.

알리가 암살된 661년, 무아위야는 칼리프로 인정받고 자신의 근거지인 다마스쿠스를 수도로 삼았다. 그가 아들 야지드를 후계자로 정하면서 칼리프 자리는 선출이 아니라 우마이야 가문의 세습이 되었다. 알리와 그 자손만이 정당한 지도자라고 여긴 사람들("알리의 당파", 시아)은 이에 반발했고, 이 갈등이 수니파와 시아파가 갈라지는 출발점이 되었다.
우마이야 왕조는 정복을 이어가 동쪽으로는 중앙아시아와 인더스강 유역, 서쪽으로는 북아프리카와 이베리아반도에 이르렀다. 아랍어를 행정 공용어로 삼고 아랍식 금화(디나르)를 만들었으며, 예루살렘의 바위의 돔(691)과 다마스쿠스의 우마이야 모스크를 세웠다.
그러나 아랍인을 우대해, 이슬람으로 개종한 비아랍인(마왈리)도 인두세를 내는 등 차별을 받았다. 이 불만과 시아파의 저항이 겹쳐 750년 아바스 왕조에게 무너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