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동기 시대(한반도)
기원전 2000~1500년 무렵 청동기가 쓰이기 시작했다. 벼농사가 시작되고 사유 재산과 계급이 생겨 군장이 다스리는 사회가 나타났다.
청동기는 비파형 동검·거친무늬 거울처럼 지배층의 무기와 제사 도구로 쓰였고, 농기구는 여전히 돌로 만들었다. 이삭을 따는 반달 돌칼, 홈자귀가 대표적이다. 토기는 민무늬 토기(미송리식 토기·팽이형 토기 등)를 썼다. 조·보리·콩 농사에 더해 일부 저습지에서 벼농사가 시작되었다.
농업 생산이 늘자 남는 생산물을 두고 사유 재산과 빈부 차가 생기고 계급이 나뉘었다. 지배층의 무덤인 고인돌(탁자식·바둑판식)과 돌널무덤이 만들어졌고, 강화·고창·화순 고인돌 유적은 세계 유산이다. 마을은 구릉에 자리 잡았고, 부여 송국리처럼 둘레에 환호(도랑)와 목책을 둘러 지켰다. 집터는 직사각형이 많아지고 점차 지상 가옥에 가까워졌다. 하늘의 자손이라 내세우는 선민사상을 가진 군장이 나타났고, 이 가운데 고조선이 세워졌다.
울주 반구대 암각화에는 고래·사슴·호랑이와 고래잡이 장면이 새겨져 있다. 청동기 시대의 것으로 보는 견해가 많지만 신석기 시대 말로 올려 보는 견해도 있다. 고령 장기리 암각화의 동심원은 태양 숭배를 보여 준다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