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스니아 병합 위기
다른 이름: 보스니아 위기
오스트리아-헝가리가 관리하던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를 정식으로 병합하자 세르비아와 러시아가 거세게 반발했다. 독일이 오스트리아를 밀어 주어 러시아가 물러섰다.

작자 미상 · Public domain · 원본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는 1878년 베를린 회의 뒤 오스만 제국의 땅으로 남은 채 오스트리아-헝가리가 다스려 왔다. 1908년 청년 튀르크 혁명으로 오스만이 흔들리자 오스트리아는 10월 6일 이곳을 정식으로 병합한다고 발표했다. 하루 전 불가리아도 오스만으로부터 완전한 독립을 선언했다.
남슬라브 민족을 하나로 묶으려던 세르비아는 크게 반발했고, 같은 슬라브 민족의 보호자를 자처한 러시아도 항의했다. 그러나 독일이 오스트리아 편에 굳게 서자, 러일 전쟁에서 진 뒤 힘이 약해진 러시아는 1909년 병합을 받아들였다.
굴욕을 맛본 러시아는 군비를 늘리며 세르비아와 더 가까워졌고, 범게르만주의와 범슬라브주의의 대립이 깊어졌다. 발칸반도가 "유럽의 화약고"가 되는 출발점이었고, 6년 뒤 사라예보 사건도 이 병합에 대한 반감에서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