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520년

법흥왕의 율령 반포

법흥왕이 율령을 반포하고 관리의 옷 색깔을 정했다. 병부와 상대등을 두고 "건원" 연호를 썼다.

울진 봉평리 신라비 — 524년 법흥왕 때 세운 비석, 율령에 따른 처벌을 적었다
울진 봉평리 신라비 — 524년 법흥왕 때 세운 비석, 율령에 따른 처벌을 적었다

Mansegmj · CC BY-SA 4.0 · 원본

법흥왕은 517년 군사를 맡는 병부를 설치하고, 520년 율령 반포와 함께 17관등에 따른 공복을 정했다. 531년 귀족 회의(화백 회의)를 이끄는 상대등을 두었고, 536년 신라 최초의 연호 "건원"을 썼다. 527년 불교를 공인하고 532년 금관가야를 병합해 신라는 중앙 집권 국가의 틀을 갖추었다.

골품제도 이 무렵 정비되었다. 골품에 따라 오를 수 있는 관등은 물론 집의 크기와 옷 색깔까지 정해졌다.

지도에서 보기

520년의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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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나라와 지도자
신라 — 법흥왕
관련 장소
서라벌 (경주)

관련 인물

  • 법흥왕540년

    군주 · 신라 제23대 왕. 율령을 반포하고 불교를 공인했으며 금관가야를 병합하고 "건원" 연호를 썼다

앞뒤 사건

이전 사건
520년 기마 인물형 토기
이후 사건
525년 무령왕릉 조성

이 사건이 든 테마

  • 중앙 통치 기구의 변천250년 – 1899년

    제가 회의·화백 회의에서 의정부·비변사, 군국기무처까지 — 귀족의 합의와 왕권 사이에서 중앙 기구가 어떻게 바뀌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