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분쟁208년 가을

장판 전투

다른 이름: 장판파 전투, 당양 전투

형주로 내려온 조조의 기병이 남쪽으로 달아나던 유비를 당양 장판에서 따라잡았다. 유비는 처자를 버리고 달아났고, 장비가 다리를 끊고 뒤를 막았다.

208년 조조가 형주로 내려오자 유표의 뒤를 이은 유종이 항복했다. 번성에 있던 유비는 남쪽의 강릉으로 물러났는데, 그를 따르는 백성이 10여만에 이르러 하루에 10여 리밖에 가지 못했다. 조조는 정예 기병 5천으로 하루 밤낮에 300여 리를 달려 당양 장판에서 유비를 따라잡았다. 유비는 처자를 버리고 제갈량·장비·조운 등 수십 기와 함께 달아났다.

정사 『삼국지』 장비전에 따르면 장비는 기병 20여 명으로 뒤를 막으며 강을 등지고 다리를 끊은 채 눈을 부릅뜨고 "내가 장익덕이다. 와서 죽음을 걸고 싸우자"고 외쳤고, 감히 다가오는 자가 없었다. 조운전에는 조운이 유비의 어린 아들(뒷날의 유선)을 품고 감부인을 지켜 난을 면하게 했다고 적혀 있다. 유비는 한진에서 관우의 수군과 만나 하구로 물러났고, 이어 손권과 손잡아 적벽에서 조조와 맞섰다.

지도에서 보기

208년의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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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나라
한
관련 장소
당양 장판

관련 인물

  • 조조155년 – 220년

    지휘관 · 후한 말의 승상·위왕. 헌제를 끼고 관도 대전에서 원소를 꺾어 화북을 통일했다. 위 건국의 기틀을 놓았다

  • 유비161년 – 223년

    지휘관 · 촉한의 건국 황제(소열제). 한 황실의 후손을 내세워 221년 성도에서 황제가 되었다

  • 장비221년

    지휘관 · 유비의 장수. 탁군 사람. 208년 장판에서 다리를 끊고 조조의 기병을 막았다. 221년 부하에게 살해되었다

  • 조운229년

    지휘관 · 유비의 장수. 자는 자룡. 208년 장판에서 유비의 어린 아들(유선)과 감부인을 지켜 살렸다

  • 유선207년 – 271년

    관련자 · 촉한의 2대이자 마지막 황제. 263년 위의 등애가 성도에 이르자 항복했다

하위 사건 1건

  1. 『삼국지연의』의 장면 — 조자룡이 홀로 조조의 대군 속을 드나들며 아두를 구했다. 정사에는 아두를 지켰다는 짧은 기록만 있다.

앞뒤 사건

이후 사건
208년 적벽 대전

이 사건이 든 테마

  • 삼국지(三國志)184년 – 280년

    황건적의 난부터 진의 통일까지 — 조조·유비·손권이 다툰 위·촉·오 삼국 시대 100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