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판 전투
다른 이름: 장판파 전투, 당양 전투
형주로 내려온 조조의 기병이 남쪽으로 달아나던 유비를 당양 장판에서 따라잡았다. 유비는 처자를 버리고 달아났고, 장비가 다리를 끊고 뒤를 막았다.
208년 조조가 형주로 내려오자 유표의 뒤를 이은 유종이 항복했다. 번성에 있던 유비는 남쪽의 강릉으로 물러났는데, 그를 따르는 백성이 10여만에 이르러 하루에 10여 리밖에 가지 못했다. 조조는 정예 기병 5천으로 하루 밤낮에 300여 리를 달려 당양 장판에서 유비를 따라잡았다. 유비는 처자를 버리고 제갈량·장비·조운 등 수십 기와 함께 달아났다.
정사 『삼국지』 장비전에 따르면 장비는 기병 20여 명으로 뒤를 막으며 강을 등지고 다리를 끊은 채 눈을 부릅뜨고 "내가 장익덕이다. 와서 죽음을 걸고 싸우자"고 외쳤고, 감히 다가오는 자가 없었다. 조운전에는 조운이 유비의 어린 아들(뒷날의 유선)을 품고 감부인을 지켜 난을 면하게 했다고 적혀 있다. 유비는 한진에서 관우의 수군과 만나 하구로 물러났고, 이어 손권과 손잡아 적벽에서 조조와 맞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