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
도의
당에서 선종을 배워 와(821) 가지산문의 개조가 된 승려
784년 당에 건너가 선종(남종선)을 배우고 821년 돌아왔으나, 교종이 강하던 경주에서는 받아들여지지 않아 설악산 진전사에 숨어 지냈다. 그의 가르침은 제자 염거를 거쳐 체징에게 이어져 장흥 보림사에 가지산문이 열렸다. 경전보다 참선을 중시하는 선종은 지방 호족과 6두품의 환영을 받았다.
당에서 선종을 배워 와(821) 가지산문의 개조가 된 승려
784년 당에 건너가 선종(남종선)을 배우고 821년 돌아왔으나, 교종이 강하던 경주에서는 받아들여지지 않아 설악산 진전사에 숨어 지냈다. 그의 가르침은 제자 염거를 거쳐 체징에게 이어져 장흥 보림사에 가지산문이 열렸다. 경전보다 참선을 중시하는 선종은 지방 호족과 6두품의 환영을 받았다.
신라 말에 참선으로 깨달음을 얻는 선종이 9산 선문으로 퍼지고, 풍수지리설이 유행했다. 지방의 호족이 이를 사상적 바탕으로 삼아 성장했다.
선종을 들여온 도의가 머문 진전사 터의 통일 신라 말 석탑. 기단에 팔부신중, 1층 몸돌에 불상을 새겨 이 시기 석탑의 장식 경향을 보여 준다.
목탑을 본뜬 백제 석탑과 전탑을 본뜬 신라 석탑에서 통일 신라의 3층 석탑·승탑, 고려의 다각 다층탑과 원의 영향을 받은 대리석 탑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