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9세기 – 10세기 초
선종의 확산과 호족의 성장
신라 말에 참선으로 깨달음을 얻는 선종이 9산 선문으로 퍼지고, 풍수지리설이 유행했다. 지방의 호족이 이를 사상적 바탕으로 삼아 성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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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의가 821년 당에서 선종을 들여온 뒤, 선종은 가지산문(장흥 보림사)·실상산문 등 9산 선문으로 퍼졌다. 선종은 경전보다 참선을 중시해 "문자에 기대지 않고 마음을 바로 보아 부처가 된다(불립문자 견성성불)"고 가르쳤다. 경주 중심의 교종 권위를 부정하는 이 가르침은 독자적인 세력을 키우던 호족과 6두품의 환영을 받았다. 선종 승려의 사리를 모신 승탑과 탑비가 유행했다(화순 쌍봉사 철감선사 승탑).
도선은 땅의 기운이 나라와 개인의 운명에 영향을 준다는 풍수지리설을 널리 퍼뜨렸다. 경주가 아닌 지방의 중요성을 일깨운 풍수지리설은 호족의 성장과 뒤에 고려의 서경 중시로 이어졌다.
호족은 몰락한 중앙 귀족, 군진 세력, 해상 세력, 촌주 출신으로 스스로 성주·장군이라 일컬으며 성을 쌓고 군대를 거느렸다. 골품제에 막힌 6두품은 호족과 손잡고 새 사회를 꿈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