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1780년

박지원의 열하 사행

박지원이 청 건륭제의 생일 축하 사절을 따라 베이징과 열하에 다녀왔다. 이때 보고 들은 것을 열하일기로 엮어 북학을 주장했다.

열하(청더)의 피서산장 — 박지원이 다녀간 청 황제의 여름 궁궐
열하(청더)의 피서산장 — 박지원이 다녀간 청 황제의 여름 궁궐

takwing.kwong · CC BY-SA 2.0 · 원본

1780년 삼종형 박명원이 건륭제의 일흔 살 생일을 축하하는 사절로 가자 박지원이 따라나섰다. 황제가 피서산장이 있는 열하에 머물러 사절은 베이징을 거쳐 열하까지 갔다.

열하일기에서 박지원은 수레와 벽돌 같은 청의 문물을 받아들이고 상공업을 일으켜야 한다고 했다. 실린 「허생전」·「호질」은 양반의 위선과 무능을 꼬집었다. 정조는 이 책의 새로운 문체를 문제 삼아 문체반정을 폈다. 박지원은 홍대용·박제가와 함께 북학파로 불린다.

지도에서 보기

1780년의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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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나라와 지도자
조선 — 정조
청 — 건륭제

관련 인물

  • 박지원1737년 – 1805년

    저자 · 연암. 청에 다녀와 열하일기를 쓴 실학자

  • 홍대용1731년 – 1783년

    관련자 · 담헌. 북학파 실학자. 의산문답에서 지전설과 무한 우주론을 펴 중국 중심의 세계관을 비판했다

앞뒤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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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80년 김홍도의 풍속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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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84년 유득공의 발해고

관련 작품

  • 다큐멘터리: HD 역사스페셜 제55회 「박지원의 열하일기 4천리를 가다, 1부 고구려성을 넘어 요하를 건너다」다큐멘터리 · 2006 · KBS 1TV
  • 책: 열하일기책 · 2009 · 박지원 (김혈조 옮김) · 돌베개

이 사건이 든 테마

  • 명·청과 에도 일본1500년 – 1800년

    북로남왜와 은 경제에 흔들린 명이 이자성의 난으로 무너지고, 만주의 청이 강희·옹정·건륭 3대에 가장 넓은 영토와 번영을 이룬 시대 — 일본은 전국 시대의 통일을 거쳐 에도 막부의 막번 체제와 쇄국으로, 조선은 두 차례 전쟁 뒤 통신사와 북학으로 이웃과 만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