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르길리우스의 『아이네이스』
다른 이름: 아이네이스, 아에네이스, 에네이드
아우구스투스가 내전을 끝낸 뒤인 기원전 29년 무렵부터 시인 베르길리우스가 트로이의 아이네이아스가 이탈리아에 와서 로마의 뿌리를 놓는 서사시 『아이네이스』(12권)를 지었다. 기원전 19년 그가 끝내지 못하고 죽자, 아우구스투스의 명으로 그대로 펴냈다.

David Bjorgen · Public domain · 원본
베르길리우스는 『목가』와 『농경시』로 이름을 얻은 뒤, 기원전 29년 무렵부터 남은 생애 10년을 『아이네이스』에 바쳤다. 호메로스의 두 서사시를 본떠 앞의 여섯 권은 『오디세이아』처럼 방랑을, 뒤의 여섯 권은 『일리아스』처럼 전쟁을 노래하는 12권, 약 9,900행의 서사시다. 첫 행은 「나는 무기와 사람을 노래한다」이다. 그는 주로 나폴리에서 지었고, 아우구스투스는 쓰는 중에도 원고를 보고 싶어 했다. 뒤의 전기에 따르면 베르길리우스는 아우구스투스와 누이 옥타비아 앞에서 2·4·6권을 낭송했다.
서사시는 아이네이아스의 아들 율루스를 조상으로 내세운 율리우스 가문, 곧 아우구스투스를 트로이와 베누스에 잇고, 6권 저승의 예언과 8권 방패의 그림(악티움 해전)으로 아우구스투스 시대를 로마의 운명이 이룬 정점으로 그린다. 동시에 디도와 투르누스의 비극을 통해 제국을 세우는 값도 보여 준다.
기원전 19년 원고를 다듬으러 그리스로 가던 베르길리우스는 병을 얻어 9월 브룬디시움(브린디시)에서 죽었다. 그는 원고를 불태우라고 했으나, 아우구스투스는 친구 바리우스와 투카에게 거의 손대지 않고 펴내게 했고, 그래서 덜 채운 행이 남아 있다. 『아이네이스』는 곧 로마 학교의 교과서가 되었고, 단테가 『신곡』에서 베르길리우스를 길잡이로 삼는 등 서양 문학에 큰 영향을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