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 제국의 성립
옥타비아누스가 원로원에서 "아우구스투스" 칭호를 받으며 공화정이 끝나고 제정이 시작되었다.
포에니 전쟁으로 지중해를 손에 넣은 로마에서는 대토지(라티푼디움)가 늘고 자영농이 몰락했다. 그라쿠스 형제의 개혁이 실패한 뒤 유력자들이 자기를 따르는 군대를 거느리고 다투는 내란의 시대가 이어졌다. 카이사르는 갈리아를 정복하고 종신 독재관이 되었으나 기원전 44년 공화정 지지파에게 암살되었다.
카이사르의 양자 옥타비아누스는 안토니우스와 손잡았다가 갈라섰고, 기원전 31년 악티움 해전에서 안토니우스·클레오파트라 연합군을 무찔러 이듬해 이집트를 병합했다. 기원전 27년 그는 비상 대권을 원로원에 돌려주는 모양새를 취했고, 원로원은 그에게 "존엄한 자"라는 뜻의 아우구스투스 칭호를 바쳤다.
아우구스투스는 공화정의 제도를 남겨 둔 채 스스로를 "제1 시민(프린켑스)"이라 부르며 군대와 주요 속주를 쥐었다. 이를 원수정(프린키파투스)이라 한다. 이후 오현제 시대까지 약 200년 동안 "로마의 평화(팍스 로마나)"가 이어져, 도로망과 로마법이 제국을 하나로 묶었다. 이 무렵 팔레스타인에서 생겨난 크리스트교도 제국의 길을 따라 퍼졌다.
3세기의 혼란을 거친 뒤 디오클레티아누스는 황제를 신처럼 받드는 전제 군주정(도미나투스)으로 체제를 바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