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1920 – 1934년

산미 증식 계획

일제가 일본의 쌀 부족을 메우려고 한국에서 쌀 생산을 늘리는 계획을 세웠다. 늘어난 양보다 많은 쌀이 일본으로 실려 가 한국인의 식량 사정은 더 나빠졌다.

옛 군산 세관 — 호남의 쌀이 일본으로 실려 나가던 군산항의 세관 건물
옛 군산 세관 — 호남의 쌀이 일본으로 실려 나가던 군산항의 세관 건물

Flingsun · CC BY-SA 4.0 · 원본

일본은 공업화로 도시 인구가 늘어 1918년 쌀 소동이 일어날 만큼 쌀이 모자랐다. 1920년부터 수리 조합을 만들어 저수지·관개 시설을 늘리고, 품종을 개량하고 화학 비료를 쓰게 하고, 밭을 논으로 바꾸었다.

생산은 계획만큼 늘지 않았으나 일본으로 가져가는 쌀(이출)은 크게 늘어, 한국인 한 사람이 먹는 쌀은 줄고 만주에서 조·수수 같은 잡곡을 들여와야 했다. 수리 조합비와 비료 값을 떠안은 농민은 빚을 지고 소작농·화전민으로 떨어지거나 만주·일본으로 떠났다. 일본의 쌀값이 떨어지자 1934년 중단되었다.

지도에서 보기

1920년의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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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나라와 지도자
일제강점기 조선 — 조선 총독 사이토 마코토
일본 · 통치국 — 다이쇼 일왕

앞뒤 사건

이전 사건
1920년 물산 장려 운동

이 사건이 든 테마

  • 중화민국과 일본 제국주의1912년 – 1949년

    신해혁명으로 선 중화민국이 군벌 분열·5·4 운동·국공 합작과 북벌을 거쳐 일본의 침략에 맞서 싸우고 국공 내전으로 갈라진 시대 — 일본은 다이쇼 데모크라시에서 만주 사변·군부 쿠데타를 거쳐 중일 전쟁과 대동아 공영권으로 치달았고, 식민지 한국은 3·1 운동과 무장 독립 투쟁으로 맞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