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1922 – 1923년

민립 대학 설립 운동

이상재 등이 조선 민립 대학 기성회를 만들어 한국인 손으로 대학을 세우려고 모금 운동을 벌였다. 일제의 방해로 실패했다.

민립 대학 기성회 발기 총회를 알린 동아일보 기사 — 1923년 3월 30일
민립 대학 기성회 발기 총회를 알린 동아일보 기사 — 1923년 3월 30일

The Dong-a Ilbo · Public domain · 원본

제2차 조선 교육령으로 대학 설립의 길이 열리자, 1922년 조선 교육회를 중심으로 기성 준비회가, 1923년 조선 민립 대학 기성회가 만들어졌다. "한민족 1천만이 한 사람 1원씩"을 구호로 국내외에서 모금했다.

총독부의 감시와 방해에 가뭄·수해까지 겹쳐 모금이 어려워졌고, 일제는 1924년 경성 제국 대학을 세워 민립 대학 설립 운동의 열기를 꺾었다.

지도에서 보기

1922년의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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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나라와 지도자
일제강점기 조선 — 조선 총독 사이토 마코토

관련 인물

  • 이상재1850년 – 1927년

    주도자 · 독립 협회에서 활동했다. 민립 대학 기성회를 이끌고 신간회 초대 회장이 되었다

앞뒤 사건

이전 사건
1921년 자유시 참변
이후 사건
1922년 제2차 조선 교육령

이 사건이 든 테마

  • 교육 기관의 변천372년 – 1943년

    태학과 국학, 국자감과 성균관에서 근대 학교와 조선 교육령까지 — 관리를 기르는 관학과 그 빈자리를 채운 사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