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1989년 10월 9일

라이프치히 월요 시위

다른 이름: 월요 시위, 동독 평화 혁명

라이프치히 니콜라이 교회의 월요 기도회 뒤 시민들이 "우리가 인민이다"를 외치며 거리로 나섰다. 10월 9일 약 7만 명이 모였는데도 정권이 무력을 쓰지 않으면서 평화 혁명의 고비를 넘었다.

라이프치히 월요 시위 — 프리드리히 갈베크 사진, 1989년 10월 23일, 독일 연방 기록 보관소
라이프치히 월요 시위 — 프리드리히 갈베크 사진, 1989년 10월 23일, 독일 연방 기록 보관소

Bundesarchiv, Bild 183-1989-1023-022 / Friedrich Gahlbeck · CC BY-SA 3.0 de · 원본

1980년대부터 라이프치히 니콜라이 교회에서는 월요일마다 평화 기도회가 열렸다. 1989년 9월 4일 기도회 뒤 시위가 시작되었고, 동독 건국 40주년(10월 7일) 무렵 곳곳의 시위가 폭력으로 진압되자 긴장이 높아졌다.

10월 9일 무장 경찰과 군이 대기한 가운데 약 7만 명이 "폭력은 안 된다", "우리가 인민이다"를 외치며 도심 순환 도로를 행진했다. 보안 부대는 끝내 개입하지 않았다. 이 뒤로 시위는 동독 전역으로 번졌고, 10월 18일 호네커가 물러났다. 구호는 차츰 "우리는 한 민족이다"로 바뀌었다.

지도에서 보기

1989년의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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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나라
동독
관련 장소
라이프치히 니콜라이 교회

관련 인물

  • 에리히 호네커1912년 – 1994년

    관련자 · 동독의 최고 지도자(1971–1989). 베를린 장벽 건설을 지휘했고, 1989년 가을 시위 속에 물러났다

앞뒤 사건

이전 사건
1989년 범유럽 피크닉
이후 사건
1989년 베를린 장벽 붕괴

이 사건이 든 테마

  • 독일의 분단과 통일1945년 – 1990년

    포츠담 회담에서 1990년 10월 3일까지 — 네 나라에 나뉘어 점령된 독일이 동서로 갈라졌다가 45년 만에 다시 하나가 되기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