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1972년 12월 21일

동방 정책과 동서독 기본 조약

다른 이름: 동방 정책, 동서독 기본 조약

브란트 정부의 동방 정책 끝에 동서독이 기본 조약을 맺어 서로를 대등한 국가로 인정하고 상주 대표부를 두었다. "접근을 통한 변화"가 시작되었다.

기본 조약 서명 뒤 기자 회견에 나선 동독의 미하엘 콜과 서독의 에곤 바르 — 후베르트 링크 사진, 1972년 12월 21일 동베를린, 독일 연방 기록 보관소
기본 조약 서명 뒤 기자 회견에 나선 동독의 미하엘 콜과 서독의 에곤 바르 — 후베르트 링크 사진, 1972년 12월 21일 동베를린, 독일 연방 기록 보관소

Bundesarchiv, Bild 183-L1221-0024 / Hubert Link · CC BY-SA 3.0 de · 원본

1969년 총리가 된 브란트는 측근 에곤 바르가 내건 "접근을 통한 변화"에 따라 동쪽과의 관계를 풀었다. 1970년 소련과 모스크바 조약, 폴란드와 바르샤바 조약을 맺었고, 동서독 총리가 에르푸르트와 카셀에서 처음 만났다. 1971년에는 4개 점령국이 베를린 협정을 맺어 서베를린 통행을 보장했다.

1972년 12월 21일 동베를린에서 바르와 동독의 미하엘 콜이 기본 조약에 서명했다. 두 나라는 국경을 존중하고 서로를 대등하게 대하기로 했으며, 대사관 대신 상주 대표부를 두었다. 서독은 동독을 "외국"으로 보지 않고 통일의 목표를 그대로 지켰다. 한반도에서도 같은 해 7·4 남북 공동 성명이 나왔다.

지도에서 보기

1972년의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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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나라
서독 · 체결국
동독 · 체결국
관련 장소
베를린

관련 인물

  • 빌리 브란트1913년 – 1992년

    핵심 인물 · 서베를린 시장(1957–1966)을 거쳐 서독 총리(1969–1974). 동방 정책으로 동유럽·동독과 화해해 1971년 노벨 평화상을 받았다

  • 에리히 호네커1912년 – 1994년

    관련자 · 동독의 최고 지도자(1971–1989). 베를린 장벽 건설을 지휘했고, 1989년 가을 시위 속에 물러났다

앞뒤 사건

이전 사건
1972년 1972 뮌헨 올림픽

이 사건이 든 테마

  • 독일의 분단과 통일1945년 – 1990년

    포츠담 회담에서 1990년 10월 3일까지 — 네 나라에 나뉘어 점령된 독일이 동서로 갈라졌다가 45년 만에 다시 하나가 되기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