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라 웁살라 신전 — 브레멘의 아담의 기록
다른 이름: 웁살라 신전, 웁살라의 이교 신전
1075년 무렵 독일의 성직자 브레멘의 아담이 스웨덴 웁살라에 금으로 꾸민 이교 신전이 있고 토르·오딘·프레이르의 신상을 모신다고 적었다. 북유럽의 이교 제사를 전하는 가장 유명한 기록이지만, 아담은 웁살라에 가 보지 않았고 들은 이야기를 적었다.

Pudelek · CC BY-SA 4.0 · 원본
브레멘 대성당의 학자 아담은 1075년 무렵 함부르크·브레멘 대주교의 역사를 라틴어로 적고, 그 4권에서 북유럽의 땅과 사람들을 그렸다. 그는 시그투나 가까이의 웁살라에 「온통 금으로 꾸민」 이름난 신전이 있고, 가운데 가장 힘센 토르가, 양옆에 무장한 보단(오딘)과 큰 남근을 지닌 프리코(프레이르)가 앉아 있다고 했다. 굶주림과 역병이 들면 토르에게, 전쟁 때는 오딘에게, 혼인 때는 프레이르에게 제물을 바쳤으며, 신전 지붕에는 멀리서도 보이는 금 사슬이 둘려 있었다고 한다.
감라 웁살라(옛 웁살라)에는 6세기 무렵의 큰 무덤 셋이 남아 있고, 스웨덴 왕들의 중요한 터전이었다. 1926년 고고학자 수네 린드크비스트가 교회 아래에서 기둥 구멍을 찾아 신전 복원도가 여럿 나왔지만, 뒷날 연구는 그 구멍들이 여러 시대의 것이라며 의문을 던졌다. 근처에서는 큰 연회장으로 보이는 건물 터도 나왔다.
아담은 웁살라에 가 본 적이 없고, 이교를 물리쳐야 할 대상으로 본 그리스도교 성직자다. 신전의 규모나 금 사슬은 부풀려졌을 수 있고, 그가 말한 「신전」이 이교 신전이었는지를 의심하는 학자도 있다. 그래도 웁살라가 이교 시대 스웨덴의 큰 제사 터였다는 데는 대체로 의견이 모인다. 웁살라는 1164년 스웨덴 대주교좌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