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건제와 장원제
다른 이름: 봉건 제도, 장원 제도, 농노제
9세기 무렵부터 서유럽에서는 주군과 봉신이 땅(봉토)과 충성을 주고받는 봉건제와, 영주가 농노를 부려 장원을 경영하는 장원제가 자리 잡았다.

Limbourg brothers / Barthélemy d'Eyck · Public domain · 원본
프랑크 왕국이 나뉘고 노르만족·마자르족·이슬람 세력이 잇따라 침입하자, 왕은 백성을 지켜 줄 힘을 잃었다. 사람들은 스스로를 지킬 수 있는 유력자에게 기댔고, 로마의 은대지 제도와 게르만족의 종사제도가 합쳐져 봉건제가 이루어졌다. 주군은 봉신에게 봉토를 주고 보호하며, 봉신은 주군에게 충성하고 군사적 봉사를 했다. 이 관계는 서로 의무를 지는 쌍무적 계약이어서, 한쪽이 의무를 어기면 깨질 수 있었다.
봉건 사회의 경제 단위는 장원이었다. 장원은 영주의 직영지와 농민의 보유지, 공동으로 쓰는 목초지·숲으로 이루어졌다. 농민 대부분은 이동과 직업 선택의 자유가 없는 농노로, 직영지에서 일하는 부역과 생산물을 바치는 공납을 지고 결혼세·사망세 등을 냈다. 영주는 국왕의 관리가 장원에 들어오는 것을 막는 불입권을 갖고 농노를 재판했다. 삼포제와 무거운 쟁기가 퍼지며 생산이 늘었다.
중세 사회는 "기도하는 사람(성직자)·싸우는 사람(기사)·일하는 사람(농민)"으로 나뉜다고 여겼다. 봉건제는 11~13세기에 가장 발달했다가 십자군 전쟁과 도시·화폐 경제의 성장으로 흔들렸다. 같은 때 고려도 전시과(976)로 관리에게 땅에서 세금을 거둘 권리를 나누어 주었으나, 봉토가 대대로 이어진 서유럽과 달리 원칙적으로 세습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