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1900년 3월 23일 (발굴 시작 — 그 뒤 수십 년 이어졌다)

에번스의 크노소스 발굴

다른 이름: 크노소스 발굴, 미노스의 궁전, 미노아 문명의 발견

1900년 3월 영국의 고고학자 아서 에번스가 크레타의 크노소스를 발굴하기 시작해 큰 궁전과 「미노스의 옥좌」, 선문자 서판들을 찾아냈다. 그는 전설의 미노스 왕의 이름을 따 이 문명을 「미노아 문명」이라 불렀다.

크노소스 궁전 북쪽 입구 둘레 — 에번스가 콘크리트로 다시 세운 부분이 보인다
크노소스 궁전 북쪽 입구 둘레 — 에번스가 콘크리트로 다시 세운 부분이 보인다

Moonik · CC BY-SA 3.0 · 원본

크노소스의 언덕은 1878년 크레타의 상인 미노스 칼로카이리노스가 처음 시굴했고, 슐리만도 땅을 사려다 그만두었다. 오스만 제국의 군대가 물러나고 자치 정부인 크레타국이 선 뒤, 에번스는 「크레타 탐사 기금」을 통해 땅을 사들여 1900년 3월 23일 발굴을 시작했다. 스코틀랜드의 고고학자 덩컨 매켄지와 함께 첫해에만 궁전의 큰 부분과 석고 옥좌가 놓인 「옥좌의 방」, 수많은 점토 서판을 찾아냈다.

에번스는 이 궁전을 미노스 왕의 미궁과 잇고, 그리스 본토보다 앞선 크레타의 청동기 문명을 「미노아 문명」이라 이름 지었다. 서판의 글자는 선문자 A와 B로 나누었는데, 선문자 B는 1952년 마이클 벤트리스가 그리스어로 읽어 내 크노소스에 미케네 그리스인이 있었음을 보여 주었다. 선문자 A는 아직 읽지 못한다. 연구는 『미노스의 궁전』(1921 – 1935)으로 정리되었고, 1911년 그는 기사 작위를 받았다.

에번스는 1920 – 30년대에 철근 콘크리트로 궁전의 일부를 다시 세우고 벽화를 크게 복원했는데, 이 복원이 얼마나 옳은지, 이 건물을 「왕의 궁전」으로 볼 수 있는지는 지금도 논란이 있다. 출토품은 이라클리오 고고학 박물관에 있으며, 크노소스는 2025년 다른 미노아 궁전 유적들과 함께 유네스코 세계 유산이 되었다.

지도에서 보기

1900년의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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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장소
크노소스 궁전

관련 인물

  • 아서 에번스1851년 – 1941년

    핵심 인물 · 영국의 고고학자. 1900년부터 크레타의 크노소스 궁전을 발굴해 「미노아 문명」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앞뒤 사건

이전 사건
1896년 1896 아테네 올림픽
이후 사건
1908년 청년 튀르크 혁명

이 사건이 든 테마

  • 그리스의 영웅들기원전 1400년 – 1900년

    페르세우스와 메두사, 헤라클레스의 열두 과업, 이아손과 황금 양털, 테세우스와 미노타우로스, 이카로스의 날개, 오이디푸스와 안티고네 — 그리스 신화의 영웅 이야기를 따라가며, 티린스·크노소스·테바이의 유적과 비극의 초연, 그 이야기를 그린 조각과 그림을 함께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