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1908년 7월 24일 (헌법 부활)

청년 튀르크 혁명

다른 이름: 청년 튀르크당 혁명, 제2차 입헌 정치

청년 장교와 지식인의 "통일과 진보 위원회"가 봉기해 술탄 압뒬하미트 2세에게 미드하트 헌법을 되살리게 했다. 이듬해 술탄을 폐위했다.

헌법 부활을 기념한 오스만 그리스계의 석판화 — 1908년, 미드하트 파샤·엔베르 등이 그려졌다
헌법 부활을 기념한 오스만 그리스계의 석판화 — 1908년, 미드하트 파샤·엔베르 등이 그려졌다

Sotiris Christidis · Public domain · 원본

압뒬하미트 2세의 전제 정치 아래 서양식 교육을 받은 청년 장교와 지식인들은 비밀 결사 "통일과 진보 위원회"를 만들었다(청년 튀르크당). 1908년 7월 마케도니아 주둔군의 장교들이 봉기하자, 술탄은 7월 24일 30년 동안 멈추었던 헌법을 되살리고 의회를 열었다. 1909년 4월 반혁명이 일어나자 이를 진압하고 술탄을 폐위했다.

그러나 혁명의 혼란을 틈타 1908년 불가리아가 독립을 선언하고 오스트리아가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를 병합했으며, 이어 이탈리아–튀르크 전쟁(1911)과 발칸 전쟁(1912–1913)으로 영토를 더 잃었다. 정권을 잡은 청년 튀르크당은 튀르크 민족주의를 앞세워 아랍 민족주의의 반발을 불렀고, 독일 편에 서서 제1차 세계 대전에 참전했다.

지도에서 보기

1908년의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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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나라
오스만 제국
불가리아 · 독립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관련 인물

  • 압뒬하미트 2세1842년 – 1918년

    군주 · 오스만 제국의 술탄(1876–1909). 헌법을 공포했다가 곧 멈추고 30년 동안 전제 정치를 폈다

앞뒤 사건

이후 사건
1912년 발칸 전쟁

이 사건이 든 테마

  • 제국주의와 세계 분할1839년 – 1914년

    탄지마트에서 사라예보까지 — 열강이 서아시아·인도·동남아시아·아프리카·태평양을 나누어 가지고, 그곳 사람들이 개혁과 저항으로 맞선 75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