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1895년 8월 20일(음력)
을미사변(명성황후 시해 사건)
1895년 음력 8월 20일(양력 10월 8일), 일본 공사 미우라 고로가 보낸 낭인과 군인이 경복궁 건청궁에 들어가 명성황후를 시해했다.

Maurice Courant · Public domain · 원본
삼국 간섭으로 일본의 힘이 꺾이자, 고종과 명성 황후는 러시아를 끌어들여 일본을 견제하려 했고 친러·친미 인사가 내각에 들어갔다. 이에 일본 공사 미우라 고로가 왕후 시해를 꾸몄다.
8월 20일 새벽 일본군과 낭인들이 조선 훈련대 일부를 앞세워 경복궁에 들어가 건청궁 곤녕합에서 왕후를 시해하고 시신을 불태웠다. 궁궐에 있던 미국인 다이와 러시아인 사바틴이 이를 목격해 국제적으로 알려졌으나, 미우라 등은 일본의 재판에서 증거 불충분으로 풀려났다.
일본은 친일 김홍집 내각을 다시 세워 단발령 등 을미개혁을 밀어붙였다. 왕후 시해와 단발령에 분노한 유생들이 을미의병을 일으켰고, 위협을 느낀 고종은 이듬해 러시아 공사관으로 옮겼다(아관파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