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토지 개혁
다른 이름: 토지 개혁법, 토개, 투쟁 대회
1950년 6월 토지 개혁법이 공포되어 1952–1953년까지 전국 농촌에서 지주의 땅을 빼앗아 농민에게 나누었다. 마을마다 열린 "투쟁 대회"에서 많은 지주가 공개 재판을 받고 처형되었다.

《人民画报》 · Public domain · 원본
공산당은 내전 중에도 점령지에서 토지 개혁을 벌였고, 건국 뒤 1950년 6월 28일 중화인민공화국 토지 개혁법을 공포해 아직 개혁이 되지 않은 화둥·중난·시난 등의 농촌으로 넓혔다. 공작대가 마을에 들어가 주민을 지주·부농·중농·빈농·고농의 계급으로 나누고, 지주의 땅과 가축·농기구·집을 몰수해 땅이 없거나 적은 농민에게 나누었다. 약 3억 명의 농민이 땅을 얻었다고 공식 집계된다.
개혁은 마을마다 여는 "투쟁 대회"를 통해 진행되어, 지주로 분류된 사람들이 공개적으로 고발당하고 맞거나 처형되었다. 같은 시기의 반혁명 진압 운동과 겹쳐 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었는데, 사망자 추정은 연구자에 따라 수십만 명에서 200만 명 안팎(일부는 그 이상)까지 크게 엇갈린다.
나누어 준 땅은 오래가지 않았다. 1953년부터 호조조와 초급 합작사, 1955–1956년의 고급 합작사로 농업 집단화가 빠르게 진행되었고, 1958년에는 인민공사로 묶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