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1712년 5월 15일(음력)

백두산정계비 건립

조선과 청의 관리가 백두산에 올라 두 나라의 경계를 정하고 비를 세웠다. 비문의 토문강 해석은 뒤에 간도 문제로 이어졌다.

백두산 천지
백두산 천지

SSchlhmr · CC BY-SA 4.0 · 원본

청의 관리 목극등이 조선 관리들과 함께 백두산 남쪽 분수령에 비를 세웠다. 비문에는 "서쪽은 압록, 동쪽은 토문을 경계로 한다(西爲鴨綠 東爲土門)"라고 새겼다.

19세기 후반 간도로 옮겨 가 사는 조선인이 늘자, 조선은 토문강이 송화강의 지류라며 간도가 조선 땅이라 했고, 청은 두만강이라고 맞섰다. 대한제국은 1903년 이범윤을 간도 관리사로 보냈으나, 1909년 외교권을 빼앗은 일본이 청과 간도 협약을 맺어 간도를 청의 영토로 인정했다(한국 학계는 이 협약을 무효로 본다). 비석은 1931년 만주 사변 무렵 없어졌다.

지도에서 보기

1712년의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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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나라와 지도자
조선 — 숙종
청 — 강희제
관련 장소
백두산정계비

관련 인물

  • 숙종1661년 – 1720년

    군주 · 조선 제19대 왕. 잦은 환국으로 왕권을 세웠고 백두산정계비를 세웠다

앞뒤 사건

이후 사건
1721년 신임옥사

이 사건이 든 테마

  • 명·청과 에도 일본1500년 – 1800년

    북로남왜와 은 경제에 흔들린 명이 이자성의 난으로 무너지고, 만주의 청이 강희·옹정·건륭 3대에 가장 넓은 영토와 번영을 이룬 시대 — 일본은 전국 시대의 통일을 거쳐 에도 막부의 막번 체제와 쇄국으로, 조선은 두 차례 전쟁 뒤 통신사와 북학으로 이웃과 만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