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1883년 – 1950년
조만식
평양에서 조선 물산 장려회를 만들어 물산 장려 운동을 이끌었다
오산 학교 교장을 지냈고, 3·1 운동에 참여해 옥고를 치렀다. 1920년 평양에서 조선 물산 장려회를 만들어 "내 살림 내 것으로", "조선 사람 조선 것" 같은 구호 아래 토산품 애용과 근검저축을 이끌었다. 1923년 서울에 전국 조직이 생기며 운동이 퍼졌으나, 토산품 값만 올려 자본가에게 이롭다는 사회주의자의 비판을 받았다. 민립 대학 설립 운동과 신간회에도 참여했다. 광복 뒤 평안남도에서 건국 준비 위원회를 이끌고 조선 민주당을 만들었으나, 신탁 통치에 반대하다 소련군에 연금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