쭌이 회의
다른 이름: 준의 회의
대장정 중이던 1935년 1월 구이저우성 쭌이에서 공산당이 정치국 확대 회의를 열어 보구와 오토 브라운의 군사 지도를 비판하고 마오쩌둥을 지도부 핵심으로 끌어올렸다.

N509FZ · CC BY-SA 4.0 · 원본
1934년 12월 샹강을 건너며 홍군이 크게 줄어들자 지도부 안에서 그동안의 작전에 대한 비판이 커졌다. 홍군은 방향을 바꿔 구이저우로 들어가 1935년 1월 7일 쭌이를 차지했고, 1월 15일부터 17일까지 이곳의 군벌 저택에서 정치국 확대 회의가 열렸다.
회의는 다섯째 포위 공격에 맞선 패배의 책임을 보구와 코민테른 고문 오토 브라운(리더)의 정면 방어 전략에 돌렸고, 마오쩌둥을 정치국 상무 위원으로 뽑았다. 2월에는 장원톈이 보구를 대신해 당의 총책임을 맡았고, 3월 마오쩌둥·저우언라이·왕자샹의 3인 군사 지휘 소조가 꾸려졌다. 공산당의 공식 역사는 이 회의를 마오쩌둥의 지도적 지위가 서기 시작한 전환점으로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