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1699년 1월 26일

카를로비츠 조약

다른 이름: 카를로프치 조약

신성 동맹과의 전쟁에서 진 오스만 제국이 헝가리·트란실바니아 등을 오스트리아에 넘겼다. 오스만이 큰 영토를 처음으로 내준 조약으로, 쇠퇴의 시작으로 꼽힌다.

1699년 카를로비츠 강화 회담 — 17세기 말·18세기 초의 판화
1699년 카를로비츠 강화 회담 — 17세기 말·18세기 초의 판화

unknown person from Low Countries · Public domain · 원본

빈 포위가 실패한 뒤 16년 동안 이어진 신성 동맹 전쟁에서 오스만군은 부다(1686)를 잃고, 1697년 첸타에서 오이겐 공의 오스트리아군에 크게 졌다. 1699년 1월 26일 영국과 네덜란드의 중재로 카를로비츠에서 맺은 조약으로 오스트리아는 헝가리 대부분과 트란실바니아를, 폴란드는 포돌리아를, 베네치아는 펠로폰네소스반도(모레아)를 얻었다. 러시아는 이듬해 따로 조약을 맺어 아조프를 차지했다.

오스만 제국이 패전국으로서 유럽의 큰 땅을 내준 것은 처음이었다. 이로써 합스부르크 가문은 도나우강 유역의 강대국이 되었고, 오스만 제국은 18세기 내내 러시아·오스트리아에 밀리며 서양의 군사·기술을 배우려는 개혁을 고민하게 되었다. 같은 무렵 조선에서는 안용복이 일본에 건너가 울릉도·독도가 조선 땅임을 주장했다(1693·1696).

지도에서 보기

1699년의 지도

OpenFreeMap © OpenMapTiles © OpenStreetMap contributors

당시 나라
오스만 제국 · 체결국
합스부르크 군주국 · 체결국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 · 체결국
베네치아 공화국 · 체결국
관련 장소
카를로비츠

앞뒤 사건

이전 사건
1683년 제2차 빈 포위

이 사건이 든 테마

  • 이슬람 제국의 번영과 대서양 세계1500년 – 1800년

    술레이만 1세의 오스만, 아크바르의 무굴, 아바스 1세의 사파비가 번영하다 18세기에 기울고, 대서양에서는 노예 무역과 식민지가 아메리카를 바꾸어 미국 독립에 이른 300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