랴오선·화이하이·핑진 전역
다른 이름: 3대 전역, 랴오선 전역, 화이하이 전역, 핑진 전역, 쉬방 회전, 창춘 포위전
1948년 9월부터 1949년 1월까지 인민 해방군이 둥베이의 랴오선, 쉬저우 일대의 화이하이, 베이핑·톈진의 핑진 전역에서 잇달아 이겨 국민당군 주력을 무너뜨렸다. 베이핑은 싸움 없이 넘어갔다.

작자 미상 · Public domain · 원본
랴오선 전역(1948년 9월 12일 – 11월 2일)에서 린뱌오의 둥베이 야전군은 먼저 랴오시 회랑의 진저우를 함락(10월 15일)해 둥베이의 국민당군을 고립시켰다. 창춘은 반년 가까운 포위 끝에 10월 항복했는데, 이 포위 동안 성안의 민간인이 대규모로 굶어 죽었다(추정은 10만 명대에서 30만 명까지 엇갈린다). 11월 2일 선양이 함락되어 둥베이 전체가 공산당 손에 들어갔다.
화이하이 전역(1948년 11월 6일 – 1949년 1월 10일)은 쉬저우를 중심으로 화둥·중위안 야전군이 덩샤오핑을 서기로 한 총전선 위원회 아래 싸운 내전 최대의 싸움이었다. 황바이타오·황웨이·두위밍의 병단이 차례로 포위되어 무너졌다. 핑진 전역(1948년 11월 29일 – 1949년 1월 31일)에서는 해방군이 1월 15일 톈진을 공격해 빼앗았고, 베이핑을 지키던 푸쭤이가 협상에 응해 1월 31일 해방군이 싸움 없이 베이핑에 들어갔다.
중국 측 집계로 세 전역에서 국민당군 약 150만 명이 죽거나 다치거나 포로가 되거나 투항했다. 장제스는 1949년 1월 21일 총통직에서 물러났고, 해방군은 4월 창장강을 건너 난징을 차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