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이카 개신
다른 이름: 대화 개신, 을사의 변
645년 나카노오에 황자와 나카토미노 가마타리가 권세를 휘두르던 소가씨를 무너뜨리고, 당의 율령 제도를 본떠 왕(천황) 중심의 중앙 집권 국가를 세우려는 개혁을 시작했다.

Gukei Sumiyoshi · Public domain · 원본
6–7세기 왜에서는 백제에서 불교를 받아들인 소가씨가 왕실을 누르고 권력을 쥐었다. 수·당에 다녀온 유학생·승려들이 율령 국가의 모습을 전하자, 645년 나카노오에 황자와 나카토미노 가마타리는 궁중에서 소가노 이루카를 죽이고 그 아버지 에미시를 자결하게 했다(을사의 변). 고토쿠 일왕이 즉위하고 처음으로 연호 다이카(大化)를 썼다.
646년 내린 개신의 조서는 왕족·호족의 땅과 백성을 나라의 것으로 하고(공지공민), 호적을 만들어 백성에게 토지를 나누어 주며(반전수수법), 조용조의 세금을 거두는 제도를 내세웠다. 다만 『일본서기』에 실린 조서는 뒤에 다듬어진 것이라는 견해가 많다. 663년 백강 전투에서 진 뒤 나카노오에(덴지 일왕)는 백제 유민의 도움으로 방어 시설을 쌓고 개혁을 이었으며, 701년 다이호 율령으로 율령 국가가 완성되었다. 이 무렵부터 "일본"이라는 나라 이름과 "천황"이라는 칭호를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