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기원전 2세기 무렵 – 494년

부여의 성장

쑹화강 유역의 넓은 평야에서 부여가 일어났다. 왕 아래 마가·우가·저가·구가가 사출도를 나누어 다스렸다.

부여의 금동 신수무늬 장식판 — 지린성박물관
부여의 금동 신수무늬 장식판 — 지린성박물관

H2v5o68z · CC0 · 원본

부여는 1세기 무렵 왕을 칭하고 중국과 외교를 맺을 만큼 자랐지만, 여러 가(加)가 따로 사출도를 다스리는 연맹 왕국이었다. 흉년이 들면 왕에게 책임을 묻기도 했다.

12월에 영고라는 제천 행사를 열었고, 남의 물건을 훔치면 12배로 갚게 하는 1책 12법, 왕이 죽으면 사람을 함께 묻는 순장, 소의 굽으로 전쟁의 길흉을 점치는 우제점 풍습이 있었다. 고구려·백제는 부여에서 나왔다고 스스로 밝혔다. 494년 고구려에 항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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