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관의 치와 당의 율령 체제
다른 이름: 정관지치, 당의 율령 체제, 3성 6부
당 태종이 3성 6부의 중앙 관제와 율령격식, 균전제·조용조·부병제를 갖추고 신하의 간언을 받아들이며 다스려 "정관의 치"로 불리는 안정기를 이루었다.

작자 미상 · Public domain · 원본
태종의 연호 정관(627–649) 동안 당의 통치 체제가 완성되었다. 중앙에는 황제의 명령을 만드는 중서성, 이를 심의하는 문하성, 집행하는 상서성의 3성과, 상서성 아래 이·호·예·병·형·공부의 6부를 두고, 감찰 기관 어사대를 두었다. 법은 형벌을 정한 율, 행정 제도를 정한 령, 이를 고치고 보충한 격, 시행 세칙인 식으로 이루어졌다(율령격식).
균전제로 성인 남자(정남)에게 토지를 나누어 주고, 곡물(조)·노동이나 그 대신 내는 비단(용)·지역 특산물(조)을 거두는 조용조를 매겼으며, 농민이 평소에는 농사짓고 번갈아 군역을 지는 부병제를 시행했다. 태종은 위징 등의 쓴소리를 받아들였고, 그와 신하들의 문답은 뒤에 『정관정요』로 엮여 제왕학의 교과서가 되었다. 630년 동돌궐을 무너뜨려 북방 민족에게서 "천가한"이라 불렸고, 정복한 지역에는 도호부를 두고 그곳의 우두머리를 통해 다스리는 기미 정책을 폈다.
국자감에는 신라·고구려·백제·고창·토번이 자제를 보내 배우게 했다. 이 율령 체제는 신라·발해·일본이 받아들여 동아시아 문화권의 틀이 되었다. 그러나 태종이 645년 직접 이끈 고구려 원정은 안시성에서 막혀 실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