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1985년 3월 – 1991년 12월

고르바초프의 개혁·개방

다른 이름: 페레스트로이카, 글라스노스트

소련의 고르바초프가 개혁(페레스트로이카)과 개방(글라스노스트)을 펴고 "신사고" 외교로 미국과 군축에 나섰다. 동유럽의 공산 정권이 잇달아 무너지고 냉전이 끝났다.

첫 정상 회담에서 만난 레이건과 고르바초프 — 1985년 11월 19일, 제네바
첫 정상 회담에서 만난 레이건과 고르바초프 — 1985년 11월 19일, 제네바

President (1981-1989 : Reagan). White House Photographic Office. 1981-1989 · Public domain · 원본

1985년 3월 서기장이 된 고르바초프는 침체한 경제를 살리려 시장 요소를 들이는 개혁(페레스트로이카)과 언론·정보의 개방(글라스노스트)을 폈다. 1986년 체르노빌 원전 사고는 개방의 필요를 더 드러냈다.

밖으로는 1987년 미국과 중거리 핵전력(INF) 조약을 맺고 아프가니스탄에서 철군했으며, 동유럽 나라의 일에 끼어들지 않겠다고 밝혔다. 1989년 폴란드·헝가리·동독·체코슬로바키아·루마니아 등에서 공산 정권이 잇달아 무너졌고, 그해 12월 몰타에서 부시와 고르바초프가 냉전의 끝을 선언했다. 그러나 경제난과 민족 분규 속에 소련은 1991년 해체되었다.

지도에서 보기

1985년의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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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나라와 지도자
소련 — 최고 지도자 고르바초프

관련 인물

  • 미하일 고르바초프1931년 – 2022년

    주도자 · 소련 공산당 서기장(1985–1991)이자 첫 대통령. 개혁(페레스트로이카)·개방(글라스노스트)을 펴 냉전을 끝냈으나 소련 해체를 막지 못했다. 1990년 노벨 평화상

앞뒤 사건

이전 사건
1957년 스푸트니크 1호 발사
이후 사건
1988년 북방 외교

이 사건이 든 테마

  • 냉전1945년 – 1991년

    얄타 회담에서 소련 해체까지 — 미국과 소련이 이끈 두 진영이 세계를 나누어 맞선 반세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