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17 – 19세기

모내기법 확산과 장시의 발달

조선 후기 모내기법이 전국으로 퍼져 벼·보리 이모작과 광작이 가능해졌다. 인삼·담배 같은 상품 작물을 기르고, 장시가 1천여 곳으로 늘었다.

김홍도 장터길 — 장에 다녀오는 사람들, 단원풍속도첩
김홍도 장터길 — 장에 다녀오는 사람들, 단원풍속도첩

Kim Hong-do · Public domain · 원본

농업: 모내기법(이앙법)은 김매기 노동을 크게 줄여 한 사람이 넓은 땅을 경작하는 광작을 가능하게 했고, 논에서 벼와 보리를 번갈아 짓는 이모작이 퍼졌다. 밭에서는 고랑에 씨를 뿌리는 견종법이 보급되었다. 인삼·담배·면화·채소 같은 상품 작물을 길러 팔았고, 소작료를 수확의 절반으로 내던 타조법 대신 일정액을 내는 도조법이 일부 나타났다. 부농이 생기는 한편 많은 농민이 땅을 잃고 임노동자가 되었다.

상업: 15세기 말 전라도에서 시작된 장시가 18세기 중엽 전국 1천여 곳으로 늘었고, 대개 5일마다 열렸다. 보부상이 장시를 돌며 물건을 팔았다. 개성의 송상은 송방을 두고 인삼을 재배·판매했고, 의주의 만상은 청과, 동래의 내상은 일본과 무역했으며, 경강상인은 한강을 따라 곡물을 운송했다. 포구에서는 객주·여각이 숙박·중개·금융을 맡았다.

수공업·광업: 민영 수공업이 늘고, 상인이 자금을 미리 대는 선대제가 나타났다. 광산은 개인의 채굴을 허락하고 세금을 걷는 설점수세제(1651)를 거쳐, 상인 물주의 자본을 받은 덕대가 광부를 고용해 경영했다.

지도에서 보기

1600년의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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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나라와 지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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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건이 든 테마

  • 개성901년 – 2003년

    송악의 호족 왕건에서 개성 공단까지 — 500년 고려의 도읍 개경, 송상의 도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