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스티니아누스 황제의 치세
비잔티움 제국의 유스티니아누스 황제는 북아프리카·이탈리아 등 옛 서로마 땅을 되찾고 로마법 대전을 펴내 로마 제국의 부흥을 꾀했다.

Petar Milošević · CC BY-SA 4.0 · 원본
서로마 제국이 무너진 뒤에도 동로마(비잔티움) 제국은 콘스탄티노폴리스를 중심으로 로마 제국의 정통을 이었다. 527년 즉위한 유스티니아누스 1세는 "하나의 제국, 하나의 법, 하나의 교회"를 내걸고 지중해를 다시 로마의 바다로 만들려 했다. 532년 수도에서 일어난 니카 반란을 황후 테오도라의 설득으로 버티며 진압한 뒤 권력을 굳혔다.
장군 벨리사리우스는 533–534년 북아프리카의 반달 왕국을 멸망시키고, 535년부터 20년 가까운 전쟁 끝에 이탈리아의 동고트 왕국을 무너뜨렸다. 에스파냐 남부도 서고트족에게서 빼앗았다. 또 트리보니아누스 등에게 로마의 법률과 법학자들의 학설을 모아 정리하게 해 「로마법 대전」(유스티니아누스 법전, 529–534)을 펴냈다. 이 법전은 뒤에 유럽 여러 나라 민법의 바탕이 되었다. 하기아 소피아 대성당도 이때 다시 지었다.
그러나 오랜 전쟁과 541년부터 퍼진 역병으로 제국의 힘은 크게 줄었고, 그가 죽은 뒤 568년 랑고바르드족이 이탈리아로 들어와 되찾은 땅의 상당 부분을 다시 잃었다. 같은 때 신라는 법흥왕이 불교를 공인하고(527) 진흥왕이 한강 유역을 차지하며(553) 크게 성장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