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1933년 3월 27일

리턴 보고서와 일본의 국제 연맹 탈퇴

다른 이름: 리턴 조사단, 국제 연맹 탈퇴

국제 연맹이 리턴 조사단의 보고서를 바탕으로 만주국을 인정하지 않고 일본군의 철수를 권고하자, 일본은 1933년 3월 국제 연맹 탈퇴를 통고했다.

국제 연맹 총회에서 퇴장한 마쓰오카 요스케를 보도한 『도쿄 아사히 신문』 — 1933년 2월 25일
국제 연맹 총회에서 퇴장한 마쓰오카 요스케를 보도한 『도쿄 아사히 신문』 — 1933년 2월 25일

Tokyo Asahi Shimbun · Public domain · 원본

중국의 제소에 따라 국제 연맹은 영국의 리턴을 단장으로 한 조사단을 만주와 일본·중국에 보냈다. 1932년 10월 공개된 보고서는 일본의 만주 내 이익을 일부 인정하면서도, 관동군의 행동은 자위로 볼 수 없고 만주국은 주민의 자발적 독립 운동으로 세워진 나라가 아니라고 결론지었다.

1933년 2월 24일 제네바의 연맹 총회는 보고서에 따른 권고안을 42 대 1(일본 반대, 타이 기권)로 채택했고, 일본 대표 마쓰오카 요스케는 회의장을 떠났다. 일본은 3월 27일 탈퇴를 통고했고, 이어 워싱턴·런던 해군 군축 조약에서도 벗어나 국제적으로 고립되었다. 침략을 막을 힘이 없음이 드러난 국제 연맹은 뒤이은 독일의 탈퇴와 이탈리아의 에티오피아 침공 앞에서도 무력했다.

지도에서 보기

1933년의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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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나라와 지도자
일본 — 쇼와 일왕
중화민국

앞뒤 사건

이전 사건
1932년 5·15 사건
이후 사건
1934년 대장정

이 사건이 든 테마

  • 중화민국과 일본 제국주의1912년 – 1949년

    신해혁명으로 선 중화민국이 군벌 분열·5·4 운동·국공 합작과 북벌을 거쳐 일본의 침략에 맞서 싸우고 국공 내전으로 갈라진 시대 — 일본은 다이쇼 데모크라시에서 만주 사변·군부 쿠데타를 거쳐 중일 전쟁과 대동아 공영권으로 치달았고, 식민지 한국은 3·1 운동과 무장 독립 투쟁으로 맞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