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분쟁1920년 10월 – 1921년
간도 참변
봉오동·청산리에서 패한 일본군이 보복으로 간도의 한인 마을을 습격해 주민을 학살하고 마을과 학교·교회를 불태웠다. 경신참변이라고도 한다.
1920년 6월 봉오동 전투에서 진 일본은 10월 마적을 매수해 훈춘의 일본 영사관을 습격하게 한 훈춘 사건을 꾸며 내고, 이를 구실로 대군을 간도로 보냈다. 이 일본군이 10월 청산리 전투에서 다시 크게 지자 그 보복으로 한인 사회를 겨냥했다.
일본군은 1920년 10월부터 이듬해 봄까지 독립군의 근거지를 없앤다며 한인 마을을 닥치는 대로 공격했다. 주민을 학살하고 집과 학교·교회를 불태웠으며, 대한민국 임시 정부의 독립신문은 3,600여 명이 학살되었다고 보도했다. 1920년이 경신년이라 경신참변이라고도 한다.
독립군은 근거지를 잃고 북쪽 밀산으로 옮겨 서일을 총재로 하는 대한 독립 군단을 만든 뒤 러시아 자유시로 넘어갔고, 그곳에서 1921년 자유시 참변을 겪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