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분쟁1597년 9월 7일(음력)

직산 전투

다른 이름: 소사평 전투

전라도를 지나 충청도로 올라온 일본군을 명군이 직산 소사평에서 막았다. 일본군은 한양으로 가는 길을 접고 남쪽으로 물러났다.

남원과 전주를 무너뜨린 일본군의 우군은 구로다 나가마사를 앞세워 충청도로 올라와 한양을 노렸다. 명나라 경리 양호는 부총병 해생 등에게 기병을 주어 내려보냈고, 9월 7일 천안 북쪽 직산의 소사평에서 두 군대가 부딪쳤다.

하루 동안 밀고 밀린 끝에 일본군은 더 올라오지 못하고 물러났다. 큰 싸움은 아니었으나 한양이 다시 위험해지는 것을 막았다. 9일 뒤 이순신이 명량에서 이기자 서해로 올라가려던 일본 수군도 막혀, 일본군은 남해안의 왜성으로 돌아가 버티는 쪽으로 바꾸었다.

지도에서 보기

1597년의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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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나라와 지도자
명 · 승전국 — 만력제
일본 · 패전국
관련 장소
직산 소사평

관련 인물

  • 양호1629년

    지휘관 · 명나라 경리(총책임자). 정유재란 때 명군을 이끌고 울산왜성을 에워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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