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485 / 494

효문제의 낙양 천도와 한화 정책

다른 이름: 한화 정책, 효문제의 개혁

북위 효문제가 균전제를 실시하고 494년 낙양으로 도읍을 옮긴 뒤, 선비족의 옷·말·성씨를 한족식으로 바꾸고 한족과의 혼인을 장려하는 한화 정책을 폈다.

룽먼 석굴 빈양중동에서 떼어 온 북위 황제의 예불 행렬 부조 — 미국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룽먼 석굴 빈양중동에서 떼어 온 북위 황제의 예불 행렬 부조 — 미국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Rosemania · CC BY 2.0 · 원본

효문제는 즉위 초 섭정하던 풍태후와 함께 485년 균전제를 실시해, 나라가 백성에게 토지를 나누어 주고 세금을 거두는 틀을 세웠다. 균전제는 수·당으로 이어져 율령 체제의 토지 제도가 되었다. 친정한 뒤에는 한족 지배를 굳히려고 493–494년 도읍을 평성에서 낙양으로 옮겼다.

이어 조정에서 선비족 옷과 선비어를 금하고, 황실의 성 탁발을 원(元)으로 바꾸는 등 선비족 성을 한족식으로 고쳤으며, 한족 명문가와의 혼인을 권했다. 낙양 남쪽 룽먼에는 새 석굴을 파기 시작했다. 그러나 한화에 반발한 북쪽 변경의 군인들이 523년 6진의 난을 일으켰고, 북위는 534년 동위와 서위로 갈렸다. 서위에서 시작된 부병제와 호한 융합의 지배층은 북주를 거쳐 수·당으로 이어졌다.

지도에서 보기

494년의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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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나라
북위 · 주도국
관련 장소
낙양 (뤄양), 룽먼 석굴 (용문 석굴)

관련 인물

  • 북위 효문제467년 – 499년

    주도자 · 북위의 황제(재위 471–499). 균전제를 시행하고 낙양으로 천도해 선비족의 옷·말·성씨를 한족식으로 바꾸는 한화 정책을 폈다

앞뒤 사건

이전 사건
450년 지안 장군총

이 사건이 든 테마

  • 수·당과 동아시아 문화권317년 – 979년

    남북조의 분열과 굽타 왕조에서 수·당의 통일 제국을 거쳐 송의 건국까지 — 율령·불교·유교·한자를 나눈 동아시아 문화권이 짜이고, 한반도와 일본이 그 틀로 고대 국가를 완성한 시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