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1929년 1월 – 4월

원산 총파업

원산의 노동자들이 일본인 감독의 한국인 노동자 폭행에 맞서 4개월 가까이 총파업을 벌였다. 1920년대 최대의 노동 쟁의다.

원산 총파업을 다룬 조선일보 기사 — 1929년 2월 1일
원산 총파업을 다룬 조선일보 기사 — 1929년 2월 1일

The Chosun Ilbo · Public domain · 원본

1928년 문평의 라이징선 석유 회사에서 일본인 감독이 한국인 노동자를 때린 일이 발단이 되어, 1929년 1월 원산 노동 연합회가 총파업에 들어갔다. 회사와 경찰이 파업을 깨뜨리려 했으나 노동자들은 4월까지 버텼고, 국내 여러 단체는 물론 일본·중국·프랑스·소련의 노동 단체도 격려와 지원을 보냈다.

1920년대에는 소작료를 내리라는 소작 쟁의(전남 신안 암태도 소작 쟁의, 1923–1924)와 임금 인상·노동 조건 개선을 요구하는 노동 쟁의가 크게 늘었다. 1930년대에는 일제의 탄압으로 비합법적인 혁명적 농민·노동조합 운동으로 바뀌었다.

지도에서 보기

1929년의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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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나라와 지도자
일제강점기 조선 — 조선 총독 야마나시 한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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