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파냐의 식민 지배와 라스 카사스
다른 이름: 엔코미엔다, 신법, 바야돌리드 논쟁
에스파냐는 아메리카에 부왕령을 두고 정복자에게 원주민을 부리게 하는 엔코미엔다 제도를 시행했다. 라스 카사스는 원주민 학대를 고발했고, 1542년 신법으로 엔코미엔다가 제한되었다.

Bartolomé de las Casas · Public domain · 원본
아스테카·잉카를 정복한 에스파냐는 누에바에스파냐(1535)·페루(1542) 부왕령을 두어 아메리카를 다스렸다. 엔코미엔다는 정복자에게 원주민 마을을 맡겨 공물과 노동을 받게 하는 대신 크리스트교로 이끌 의무를 지운 제도였으나, 실제로는 원주민을 광산과 농장에서 혹사하는 수단이 되었다. 전염병까지 겹쳐 원주민 인구는 크게 줄었다.
엔코미엔다를 가졌던 사제 라스 카사스는 이를 버리고 도미니코회 수도사가 되어 원주민의 권리를 외쳤다. 1542년 카를로스 1세는 엔코미엔다의 세습을 막고 원주민을 노예로 삼지 못하게 한 신법을 내렸지만, 정복자들의 반발로 일부가 물러졌다. 라스 카사스는 『인디아스 파괴에 관한 간략한 보고』(1552)를 펴냈고, 1550년 바야돌리드 논쟁에서 원주민도 이성을 가진 인간이라고 주장했다. 식민지에는 본국 출신(페닌술라르)·크리오요·메스티소·원주민·흑인 노예의 신분 질서가 자리 잡았다. 같은 때 조선에서는 주세붕이 백운동 서원(1543)을 세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