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키스 — 「황금 양털」의 땅
다른 이름: 바니 유적, 파시스
흑해 동쪽 끝, 오늘날 조지아 서부의 콜키스는 청동기 시대부터 금속 공예가 뛰어났고, 기원전 6세기 무렵부터 그리스인이 파시스 등 식민 도시를 세웠다. 바니 유적의 무덤에서 나온 금 장신구는 「금이 많은 콜키스」를 보여 준다.

Jonathan Cardy · CC BY-SA 3.0 · 원본
리오니강(옛 파시스강) 유역의 콜키스 저지에는 청동기 시대 말부터 금속 공예가 뛰어난 콜키스 문화가 일어났고, 이 땅은 조지아 역사에서 가장 이른 나라의 하나로 꼽힌다. 기원전 6세기 무렵부터 밀레토스 등의 그리스인이 강어귀의 파시스(오늘날 포티 부근)와 디오스쿠리아스(오늘날 수후미 부근)에 식민 도시를 세워 금·철·목재·꿀 등을 사들였다. 아르고호 이야기의 목적지 「아이아」가 콜키스로 굳어진 것도 기원전 5세기 무렵, 그리스인이 이 땅을 잘 알게 된 뒤다.
콜키스 내륙의 바니 유적(옛 이름 수리온)에서는 20세기에 기원전 5 – 4세기의 부유한 무덤들이 발굴되어, 정교한 금관·목걸이·팔찌가 쏟아져 나왔다. 고대의 지리학자 스트라본은 캅카스 산지의 사람들이 구멍 뚫은 통과 양가죽으로 급류에 실려 오는 사금을 거른다며, 여기서 황금 양털 이야기가 나왔다고 설명했다. 이 설명이 맞는지는 알 수 없지만, 콜키스가 금으로 이름난 땅이었던 것은 분명하다.